
고급 위스키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 가운데 하나가 맥캘란(The Macallan)입니다. 오래된 빈티지 한 병이 경매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고, 면세점과 백화점에서는 고급 싱글몰트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세계적인 위스키 작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1942-2007)이 맥캘란을 ‘싱글몰트의 롤스로이스(Rolls-Royce of Single Malts)’라고 평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오랫동안 프리미엄 싱글몰트를 대표해온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맥캘란의 명성을 단순히 ‘비싼 위스키’라는 한마디로 설명하기에는 그 뒤에 숨은 제조 철학이 훨씬 흥미롭습니다. 맥캘란이 유난히 집착하는 것은 위스키를 담는 ‘캐스크’입니다. 나무의 산지부터 통을 만드는 과정, 스페인에서 셰리 와인을 담아 시즈닝하는 시간까지 직접 관리하며 하나의 캐스크를 준비하는 데 수년을 들입니다. 여기에 유난히 작은 구리 증류기와 200년 넘게 이어진 스페이사이드의 역사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맥캘란이 완성됐습니다.
증류소의 역사
맥캘란의 역사는 18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업자 알렉산더 리드(Alexander Reid)는 교사이자 농부였으며,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증류가 합법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던 시기에 공식 증류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스페이강이 내려다보이는 Easter Elchies Estate에서 시작된 작은 증류소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려진 맥캘란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맥캘란이라는 이름의 뿌리도 이 땅과 연결됩니다. 과거 이 지역을 가리키던 ‘Maghellan’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며, 비옥한 땅을 뜻하는 게일어 ‘Magh’와 이 지역의 오래된 교회와 관련된 성 필란(St. Fillan)의 이름이 결합됐다는 설명입니다. 증류소 중심에는 1700년에 세워진 고택 Easter Elchies House가 자리하고 있는데, 지금도 맥캘란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병과 브랜드 이미지 곳곳에 등장합니다. 현재 맥캘란 에스테이트의 규모는 약 485에이커, 우리나라 기준으로 약 59만 평에 달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맥캘란이 과거를 보존하는 방식이 단순히 ‘옛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2018년 새롭게 문을 연 증류소는 주변의 완만한 언덕과 하나가 되도록 거대한 지붕 위에 잔디를 덮은 매우 미래적인 건축물입니다. 지붕에는 수천 개의 목재 패널이 사용됐고, 그 아래에는 12기의 워시 스틸과 24기의 작은 스피릿 스틸, 총 36기의 구리 증류기가 세 개의 원형 구역을 이루며 배치돼 있습니다. 겉모습은 완전히 미래로 향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는 1824년부터 이어져 온 ‘작은 증류기’의 형태와 맥캘란 특유의 증류 철학을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오크통
맥캘란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어는 ‘Sherry Seasoned Oak Cask’, 즉 셰리 와인으로 시즈닝한 오크 캐스크입니다. 여기서 흔히 하는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맥캘란이 단순히 스페인의 셰리 와이너리에서 다 쓰고 남은 낡은 셰리통을 가져와 위스키를 넣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과정은 훨씬 복잡합니다.
맥캘란은 유러피안 오크와 아메리칸 오크를 선정하고, 이를 캐스크로 제작한 뒤 스페인 헤레스 데 라 프론테라(Jerez de la Frontera)의 셰리 저장고인 보데가(Bodega)로 보내 셰리 와인을 담아 일정 기간 시즈닝합니다. 이후 셰리를 비운 캐스크를 스코틀랜드로 운송하고, 그제야 맥캘란의 뉴메이크 스피릿을 채워 숙성을 시작합니다. 맥캘란은 나무를 수확해 캐스크로 만들고 셰리 시즈닝을 거쳐 실제 스피릿을 채울 준비가 되기까지 약 6년이 걸린다고 설명합니다. 즉 맥캘란의 위스키는 증류액을 만들기 전부터 이미 캐스크를 준비하는 긴 여정이 시작되는 셈입니다.
셰리의 역할도 단순히 ‘통 안에 남은 와인이 위스키와 섞인다’는 개념과는 다릅니다. 셰리 와인을 머금었던 오크와 위스키가 수년간 접촉하면서 나무와 시즈닝 과정에서 비롯된 다양한 향미 성분이 천천히 스피릿으로 이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맥캘란을 대표하는 건과일, 향신료, 오크 계열의 풍미와 짙은 색조가 형성됩니다. 맥캘란은 카라멜 색소 등의 인공 착색에 의존하지 않고, 숙성 과정에서 오크통과 스피릿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Natural Colour를 브랜드의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오크통이라도 그 안에 들어가는 증류액의 성격이 약하다면 맥캘란 특유의 묵직한 스타일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맥캘란의 ‘Curiously Small Stills’, 유난히 작은 구리 팟 스틸입니다. 맥캘란은 작은 증류기의 형태가 구리와 증기의 접촉을 높이고, 풍부하면서도 과일 향이 강한 뉴메이크 스피릿(New Make Spirit·숙성 전 증류원액)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현재 사용하는 증류기의 형태 역시 1824년 당시의 작은 스틸과 유사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맥캘란의 방식은‘진한 성격의 뉴메이크 스피릿 + 셰리로 시즈닝한 고품질 오크 캐스크 + 긴 숙성이라는 구조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패키지보다 맥캘란이라는 위스키의 정체성을 실제로 만드는 핵심은 오랫동안 나무와 증류액 사이에서 일어나는 느린 변화에 있습니다. 어쩌면 ‘싱글몰트의 롤스로이스’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 역시 단순히 높은 가격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캐스크 하나를 준비하는 데까지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 이러한 제조 철학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셰리오크 12년 (Sherry Oak 12 Years Old)
맥캘란이라는 브랜드를 처음 이해하기 위한 한 병을 꼽는다면 The Macallan Sherry Oak 12 Years Old가 가장 직관적입니다. 현재 Sherry Oak 컬렉션은 스페인 헤레스에서 셰리로 시즈닝한 유러피안 오크 캐스크의 영향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며, 12년 제품 역시 최소 12년 동안 숙성됩니다. 맥캘란이 강조하는 건과일과 향신료, 오크의 성격을 비교적 명확하게 경험할 수 있는 제품입니다. 잔에 코를 가까이하면 건포도와 말린 과일의 진한 단향이 먼저 올라옵니다. 뒤이어 설탕에 절인 오렌지 껍질을 연상시키는 시트러스와 생강, 넛맥 같은 향신료가 느껴지고, 그 아래로 묵직한 오크 향이 깔립니다. 입안에서는 여러 종류의 건포도에서 느껴지는 농축된 과일 단맛이 중심을 잡습니다. 이어 생강 시럽과 달콤한 계피 같은 스파이스가 올라오고, 약간의 바닐라와 오크가 전체적인 무게감을 만들어줍니다. 화사하고 가벼운 스페이사이드 위스키보다는 조금 더 묵직하고 진한 방향에 가깝습니다. 삼킨 뒤에는 오크와 따뜻한 생강 계열의 스파이스가 비교적 길게 남습니다. 처음의 건과일 단맛이 점차 줄어들면서 드라이한 나무와 향신료의 느낌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노트는 맥캘란이 공식적으로 제시하는 Sherry Oak 12의 건과일·생강·오크 스파이스라는 방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맥캘란 셰리 오크 12년을 처음 마신다면 먼저 아무것도 넣지 않은 니트(Neat) 상태로 천천히 향을 확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잔에 따른 뒤 약 10분 정도 두면 처음의 알코올감 뒤에 숨어 있던 건과일과 향신료 계열의 향을 조금 더 편안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후 취향에 따라 물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 변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페어링은 카카오 함량이 높은 다크초콜릿, 무화과·건포도 같은 말린 과일, 호두나 아몬드 같은 견과류, 숙성 치즈처럼 풍미가 어느 정도 강한 음식이 잘 어울립니다. 반대로 피트와 바닷내음, 강한 훈연향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맥캘란 셰리 오크 12는 다소 얌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위스키의 매력은 강렬한 스모크가 아니라 셰리 시즈닝 오크가 만들어낸 건과일과 스파이스, 묵직한 오크의 균형에 있기 때문입니다.
200년 전 한 농부이자 교사가 시작한 작은 증류소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싱글몰트 브랜드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하지만 맥캘란의 본질을 따라가 보면 결국 이야기는 다시 한 그루의 오크나무로 돌아갑니다. 나무를 고르고, 통을 만들고, 스페인에서 셰리를 담아 기다린 뒤 다시 스코틀랜드로 가져와 수년 동안 위스키를 재우는 과정. 좋은 위스키는 병에 담기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증류소, 그것이 맥캘란입니다.